합정 편집숍의 마지막 사이즈처럼 늦게 고른 마음이 품절되는 이야기.
Written by 로코서울 편집부
혜인은 물건을 살 때도, 사람을 좋아할 때도 꼭 같은 말을 했다.
“둘러보고 다시 올게요.”
문제는 정말로 다시 온다는 점이었다. 다만 너무 늦게.
합정역 6번 출구에서 세 블록 안쪽, 간판도 없이 흰 커튼만 달린 편집숍에서 혜인은 한 남자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남자가 아니라 남자가 들고 있던 회색 니트였다. 너무 과하지 않고, 너무 심심하지 않고, 딱 적당히 다정해 보이는 니트. 그리고 그 니트를 입은 남자도 그랬다.
“이거 마지막 사이즈예요.”
직원이 말했다. 혜인은 반사적으로 웃었다.
“아, 그럼 일단 좀 둘러보고 올게요.”
그 말에 남자가 먼저 웃었다. “그 말 되게 위험한데요.”
“왜요?”
“보통 다시 오면 없거든요.”
그는 이름이 서준이라고 했다. 우연히 같은 카페 줄에 서게 됐고, 같은 라떼를 시켰고, 같은 테이블의 양끝에 앉았다. 혜인은 이런 걸 운명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샘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서준은 이런 걸 그냥 좋은 시작이라고 불렀다.
그 뒤로 둘은 세 번 만났다. 망원시장 앞에서 고로케를 나눠 먹었고, 연남동 골목에서 비를 피했고, 성수 쇼룸에서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씌워주며 웃었다. 서준은 늘 혜인에게 직진했고, 혜인은 늘 한 발 뒤에서 가격표를 확인하듯 마음을 재봤다.
“나랑 만나볼래요?”
네 번째 만남, 서준이 물었다. 혜인은 심장이 장바구니에 담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입은 또 습관처럼 말했다.
“조금만 더 생각해봐도 돼요?”
서준은 잠깐 조용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혜인은 서준의 메시지 창을 열었다 닫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일주일 뒤 드디어 답장을 쓰려던 순간, 서준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회색 니트를 입은 서준 옆에, 누군가의 손이 살짝 걸쳐져 있었다.
혜인은 편집숍으로 달려갔다. 그 니트는 없었다.
직원은 말했다.
“아, 그거요? 품절됐어요.”
혜인은 그제야 알았다. 사랑은 가끔,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순간부터 품절되기 시작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