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 싫어서 온 서촌은 과연?

by 로코서울 편집부

재하는 강남을 떠난 이유를 늘 취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좀 더 인간적인 동네가 좋더라고.”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대개 고개를 끄덕였다. 서촌의 좁은 골목, 낮은 한옥 지붕, 돌담 너머로 떨어지는 감나무 그림자. 재하가 운영하는 한옥 에어비앤비 겸 카페 ‘스테이 느린오후’는 딱 그런 말이 어울렸다. 예약 사이트 후기에도, 카페 리뷰에도 늘 비슷한 문장이 달렸다.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아요.

재하는 그 문장을 좋아했다. 자신도 서울 사람인데, 서울 출신 같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으니까.

금요일 오후, 재하는 마당에 떨어진 은행잎을 쓸다가 카페 테이블 예약 명단을 확인했다.

강서경 외 1인. 부동산 미팅.

빗자루가 멈췄다. 대치동 중학교 2학년 5반, 반장, 수학 경시대회 금상, 쉬는 시간에도 머리띠가 흐트러지지 않던 애.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식 날 재하에게 “너는 나중에 꼭 이상한 데 살 것 같아”라고 말했던 사람. 에이, 설마.

오후 네 시, 서경은 골목 끝에서 나타났다. 선글라스, 크림색 코트, 너무 깨끗한 운동화. 옆에는 얇은 서류철을 든 중개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서촌의 울퉁불퉁한 돌길이 그녀 앞에서 살짝 주눅 든 것 같았다.

“예약하신 강서경 님 맞으시죠?” 재하가 최대한 카페 사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경이 선글라스를 내렸다. 잠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주 천천히 웃었다.

“너 혹시… 박재하?”

“너 혹시… 서경? 강서경?”

둘은 동시에 말하고 동시에 멈췄다. 옆의 중개사는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는 사이세요?”

“옛날에요.” 서경이 말했다. “강남에서.”

재하는 그 한 단어에 이상하게 허리가 곧아졌다. 강남에서. 마치 원산지 표기처럼 들렸다.

마당 쪽 테이블에 앉자 서경은 공간을 둘러봤다.

“여기 참 좋다. 사진보다 훨씬 아담해서 더 정겹네.”

재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을지, 면적으로 받을지 잠깐 고민했다.

“그게 한옥의 매력이야.”

“그렇지. 요즘은 그런 감성적인 브랜딩? 그런 게 진짜 감각이더라.”

서경은 웃으며 커피 메뉴판을 내려놨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는데, 재하는 왠지 손끝이 따끔했다. 강남은 떠났는데 강남식 우아한 독침은 골목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중개사는 서류철을 펼치며 근처 상가와 주택 매물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경은 요즘 강남 집 리모델링 때문에 잠깐 다른 자산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재건축이 들어가면 더 복잡해질 것 같고, 현금 흐름도 좀 나눠야 한다고 했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재하의 귀에는 숫자들이 너무 무겁게 들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서경의 집이 있는 그 아파트. 뉴스에서 봤다. 100억이라는 숫자가 사람 사는 집에도 붙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그곳.

“좋겠다.” 말이 너무 솔직하게 나올 뻔했다.

재하는 급히 웃었다.

“나는 여기가 좋아. 강남은 좀… 피곤하잖아. 여긴 느리고, 사람 냄새 나고. 아침에 문 열면 골목에서 빗자루 소리 들리고, 손님들은 커피 마시다가 하늘 보고.”

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재하 너는 예전부터 취향 특이했잖아.”

“뭐?”

“아니, 좋은 뜻이야. 아무나 못 하지. 이렇게 여유롭게 즐기면서 쉬엄쉬엄 사는 거.”

재하는 커피잔을 닦던 손을 멈췄다. 말은 분명 칭찬인데, 닦던 잔 안쪽에 작은 금이 간 것 같았다.

말하면서도 재하는 자기 말이 너무 포장지 같다고 생각했다. 속 안에는 배 아픔이 들어 있는데, 겉은 무표백 크라프트지에 리본까지 묶은 느낌이었다.

서경은 커피잔을 들고 그를 보았다.

“이런 데 있으면 마음은 편하겠다.”

“그렇지.”

“비교할 게 별로 없잖아.”

재하는 대답 대신 에스프레소 머신 쪽을 봤다. 기계는 무심하게 김을 뿜었다. 그의 속마음도 저렇게 새어나가고 있었을까.

미팅이 끝나고 중개사가 먼저 골목을 내려갔다. 서경은 마당에 조금 더 남았다.

“재하야.”

“응?”

“너 여기랑 진짜 잘 어울린다.”

재하는 낮은 지붕 위로 겨우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강남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별 하나가 아직 뜨기 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별보다 서경의 말이 먼저 반짝였다.

서촌 한옥 카페 느린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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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서울 편집부

日常を綴る作家

서울 동네를 짧은 이야기와 산책 동선으로 엮는 로코서울 편집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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