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정 처마 아래, 우산을 잃어버리는 사람과 우산을 챙기는 사람이 만난다.
Written by 로코서울 편집부
정우는 망원동에 이사 온 지 삼 일 만에 우산을 세 번 잃어버렸다.
첫 번째는 망원시장 튀김집 앞이었다. 고추튀김 봉투가 찢어지는 바람에 우산까지 놓고 뛰었다. 두 번째는 희우정로 카페였다. 카페 사장님이 “손님, 우산…” 하고 부를 때 이미 정우는 합정역 근처까지 가 있었다. 세 번째는 조금 더 심각했다. 우산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애초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가 있었고, 하늘은 오전부터 대놓고 흐렸다. 그런데도 정우는 “설마”라는 인간의 가장 멍청한 믿음 하나만 들고 집을 나왔다.
비는 망원정 계단 앞에서 터졌다.
처음엔 몇 방울이었다. 그다음엔 누가 하늘 위에서 물통을 엎은 것처럼 쏟아졌다. 정우는 망원정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티셔츠는 젖었고, 운동화에서는 물 먹은 스펀지 소리가 났다.
그때 옆에서 노란 우비를 입은 여자가 말했다.
“또 없네요.”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지난주 망원시장 앞에서 그의 고추튀김 봉투를 같이 주워줬던 여자였다. 그때도 그녀는 노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저 아세요?”
“아뇨. 근데 우산 없는 사람은 기억에 남아요. 특히 세 번 보면요.”
정우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세 번 다 없었던 건 아니고, 두 번은 있었는데 잃어버린 거예요.”
“그게 더 별론데요.”
여자는 자기 우산을 펼쳤다. 투명한 비닐 우산이었다. 손잡이에 작은 네임택이 달려 있었다.
유리.
“망원역 쪽이면 같이 가요. 어차피 저도 그쪽이에요.”
정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어색했고, 우산은 생각보다 작았다. 비는 두 사람의 어깨를 번갈아 적셨다.
“여기 이름이 희우정인 거 알아요?” 유리가 물었다.
“망원정 아니에요?”
“지금 이름은 망원정. 옛날 이름은 희우정. 기쁜 비를 만난 정자래요.”
정우는 바닥에 튀는 빗방울을 내려다봤다.
“기쁜 비 치고는 너무 많이 오는데요.”
유리가 웃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장마 동안 수요일에 비 오면 여기서 만나요. 내가 우산 챙겨올게요.”
“왜요?”
“그쪽은 계속 잃어버릴 것 같으니까.”
정우는 반박하려다가 포기했다. 맞는 말은 화가 나도 반박하기 어렵다.
“그럼 저는 뭘 하면 되는데요?”
“망원시장 튀김 사오기. 지난번에 쏟은 거 아직 아깝거든요.”
그렇게 정우의 장마가 시작됐다. 수요일마다 비가 오면, 그는 희우정 아래에서 노란 우비를 기다리게 되었다. 처음엔 우산 때문이었다. 정말로.
적어도 첫 번째 수요일까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