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ce of life

The Reptilian in Front of the Blue House

At a cafe near the Blue House, a 312-year-old disclosure plan turns into an after-work invitation.

Written by 로코서울 편집부

The Reptilian in Front of the Blue House

5-min read·#청와대 #춘추관 #카페
This story was originally written in Korean.

그룸펜은 지구에 온 지 312년 만에 가장 큰 결심을 했다.

디스클로징.

인류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일. 동족들은 말렸다

“굳이?” “지금?” “한국에서?” 하지만 그룸펜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매일 인간처럼 아메리카노를 내리고, 인간처럼 월세를 내고,

인간처럼 알바 단톡방에서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는 삶은 너무 구차했다.

그래서 그는 청와대 춘추관 앞 카페 ‘포비’에 취직했다.

이유는 전략적이었다. 기자들이 모이는 곳. 진실이 거래되는 곳.

누군가 한 명쯤은 그의 세로동공과 비늘 돋는 손등을 알아볼 것이다.

첫 출근 날, 그룸펜은 일부러 실수를 했다.

카푸치노 위에 라떼아트로 파충류 눈을 그렸다.

손님은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와, 요즘 카페들 컨셉 잘 잡네.”

두 번째 시도. 그룸펜은 더운 날에도 히터 앞에 딱 붙어 서 있었다.

기자 한 명이 물었다.

“춥습니까?”

“저는 변온동물이라서요.”

“아, 저도 손발 차요.”

인류는 생각보다 둔했다. 아니, 지나치게 바빴다.

그러던 수요일 오후, 정치부 기자 한서가 들어왔다.

늘 아이스 라떼에 샷 하나 추가, 얼음 적게. 눈 밑에 피곤이 진하게 깔린 여자였다.

그룸펜은 아무 기대 없이 컵을 내밀었다.

“오늘도 샷 추가 맞으시죠.”

한서가 컵을 받다 말고 그의 손등을 보았다.

비늘이 아주 잠깐 올라와 있었다.

그룸펜은 드디어 심장이, 정확히는 심장 비슷한 기관이 뛰기 시작했다.

“보이십니까?”

한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그룸펜의 세계가 열렸다.

그때 한서가 말했다. “손이… 참 예쁘시네요.”

그룸펜은 312년 동안 배운 모든 언어를 잃었다.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서에게만 그룸펜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다른 손님들은 그를 그저 키 큰 바리스타로 봤지만, 한서는 가끔 그의 눈동자가 얇아지는 순간을 보았다. 긴 손톱이 살짝 드러나는 것도, 햇빛 아래 목덜미에 은은한 무늬가 번지는 것도.

“혹시…” 한서가 어느 날 물었다.

그룸펜은 준비해둔 대사를 떠올렸다. 나는 고대부터 인간 문명 곁에 살아온 랩틸리언 종족이며, 피라미드와 베이글 사이에는 분명 운명론적인…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Cliffhanger

“퇴근하고… 시간 있으세요?”

한서는 잠깐 침묵했다가 웃었다.

그룸펜은 그날 처음으로 인류에게 들키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나를 더 알리고 싶어지는 일이 훨씬 위험하다는 걸 배웠다.